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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해양 실크로드 답사(공주, 부여)
작성자
권선영
작성일
2023-11-18
마한 해양 실크로드 답사를 다녀온지 6일이 지났다. 부여, 공주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니 왕릉을 걸었던 순간, 풍경들, 유물들, 함께 다닌 사람들의 말소리, 양념게장 꼭 들어가있던 충청도 음식들, 차가운 공기와 낙엽들이 떠오른다.
부여에 들어서며 가장 처음 보았던 것은 부여 로터리 가운데에 위치한 성왕의 동상이었다. 동상을 보며 백제에서 성왕이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부끄럽게도 백제 역사에 대해서는 4세기 근초고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해 삼국 중 가장 먼저 전성기를 누렸다는 것, 개로왕이 전사했다는 것, 문화가 발달해 일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 계백 장군과 무령왕릉, 의자왕에 대해서만 조금 알고 있을 뿐이었다. 공주와 부여도 베스트여행사 기획 덕분에 처음 방문했다. 분명, 역사 시간에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겼다는 것을 배웠을텐데 새카맣게 잊고 있다가 답사를 하며 다시 배웠고, 덕분에 부여 초입에 성왕의 동상이 있었던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부여에서 가장 처음 방문한 곳은 부여 왕릉원이었다. 초3 아들은 베스트여행사에서 준 팜플렛 속 백제금동대향로 미로찾기와 OX퀴즈 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늦가을 나무 아래 수북히 쌓인 낙엽들을 머리 위로 던지기를 반복하며 놀다가 해설자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굴식돌방무덤과 이곳은 사비시기 왕릉이 모여 있다는 설명을 해주셨는데, 사실 해설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작으셔서 모든 내용을 귀담아듣지는 못했다.
왕릉원에서 국립부여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가 전시된 곳으로 들어갔다. 입구부터 금동대향로의 미디어쇼가 펼쳐졌고, 코너를 돌자 백제금동대향로의 실물이 조명 아래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아들과 나는 합창하듯 동시에 "우와"하고 감탄을 했다. 넋을 잃고 보는 동안 해설자 선생님이 오셔서 금동대향로가 어디에서 발견되었고, 위덕왕이 성왕의 넋을 기리며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것, 여러 문양들이 왜 새겨졌는지를 정말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셨다. 아들은 해설자 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듣고는 바로 곁에 3D로 구현한 금동대향로에서 도깨비와 호랑이와 말을 탄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한참을 짚어보았다. 이걸 5세기에 만들었다니, 사람이 아니라 신이 만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교했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입구서부터 해설자 선생님이 함께했다. 선생님은 석탑 100미터 앞에서 우리에게 석탑이 몇 미터일 거 같냐고 물으셨다. 대부분이 5미터, 6미터를 말씀하셨는데, 아들은 7.4미터라고 했다. 아무리 높아도 7.4미터는 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석탑은 8.3미터였다.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다. 원래 가까이 갈수록 커지는 게 당연하지만, 가까이 가니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다. 순간 경주에서 보았던 감은사지 3층 석탑이 생각났다. 두 탑 모두 그대로 보존되었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두 탑이 주는 느낌이 비슷했다.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다는 느낌.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지금까지 한 번도 해체한 적이 없어 탑을 쌓은 년도를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으니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아들은 석탑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주변에 있는 두 개의 돌을 집어 들고 둥글게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그 후로 두 개의 돌을 들고 다니며 차를 타거나 실내에서는 주머니에 돌을 넣고, 돌길을 걸을 때면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 길바닥 위에 쪼그려 앉아 문질러댔다. 손이 신나보여서 하는대로 내버려뒀다.
점심을 먹고 방문한 공주는 온통 무령왕이었다. 공주박물관에서 무령왕의 관을 축소시킨 모형이 있어 직접 해체하고, 만들어볼 수 있었다. 마지막 코스인 무령왕릉에 도착했을 때 아들은 또 내려야하냐며 투정을 했는데, 막상 무령왕릉에 들어가서는 가장 늦게 왕릉에서 나와 버스가 있는 곳까지 빨리 움직여야했다. 벽돌무덤을 재현해 놓았는데, 무덤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아늑했다. 책상과 의자, 스탠드가 있었다면 앉아서 몇시간이고 책을 읽으면 좋은 공간이었다. 해리포터의 방 같기도 했는데, 작은 구멍으로 허리를 숙이고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면 좀 더 머물렀을 것 같다. 곳곳에 유물과 흙을 옮기는 다양한 VR체험이 있었는데, 30분이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아, 부여롯데리조트를 빠뜨리면 안될 것 같다. 아들이 가장 좋았다고 한 리조트는 한옥과 현대식이 합쳐져 밤에도 낮에도 보기에 아주 근사했다. 어떤 건축가의 작품인지 궁금해 네이버에 부여롯데리조트 건축가를 검색하니, "부여롯데리조트는 건축가 김승회의 작품이다."라고 쓰여진 글귀를 찾았다. 그리고 김승회 건축가는 부여롯데리조트를 통해 21세기 백제를 구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쓰여 있었다. 곡선형 외관 곁에 차례로 서있는 소나무, 방에서도 베란다 창을 열면 보이는 소나무들이 보기에 아주 좋았다. 다음날(11월11일) 조식을 먹으려고 눈을 뜨자마자 움직였는데, 곧 더 일찍 일어날걸 후회했다. 아보카도, 치즈, 순두부 스프, 쌀국수 등 모든 음식이 입맛에 맞았다. 생지를 직접 와플기에 넣어 구워 먹을 수 있었고, 키즈 스테이션도 따로 있었다.
그동안 몰랐는데, 공주역에서 서울역 또는 수서역까지 약 1시간 거리였다. 마한 해양 실크로드 답사를 계기로 한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를 좀 더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주역을 통해 조만간 다시 공주와 부여를 찾을 생각이다. 공주와 부여가 경주처럼 아이들을 위한 도예체험이나 동물들이 있는 농장, 새박물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부여롯데리조트에서 머무르며 한번 더 금동대향로, 정림사지 5층 석탑, 무령왕릉을 둘러보고 싶다. 그리고 두번째 방문하는 날에는 아들에게 한마디 건네고 싶다. "아들, 너도 배려하는 마음, 지혜로운 생각, 도전하는 용기를 가지면 무령왕처럼 영원히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될 수 있어."라고 말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보다 좋은 건 없지 않은가? 멋진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신 전라남도와 전남문화재연구소, 베스트 여행사에 감사드립니다.
부여에 들어서며 가장 처음 보았던 것은 부여 로터리 가운데에 위치한 성왕의 동상이었다. 동상을 보며 백제에서 성왕이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부끄럽게도 백제 역사에 대해서는 4세기 근초고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해 삼국 중 가장 먼저 전성기를 누렸다는 것, 개로왕이 전사했다는 것, 문화가 발달해 일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 계백 장군과 무령왕릉, 의자왕에 대해서만 조금 알고 있을 뿐이었다. 공주와 부여도 베스트여행사 기획 덕분에 처음 방문했다. 분명, 역사 시간에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겼다는 것을 배웠을텐데 새카맣게 잊고 있다가 답사를 하며 다시 배웠고, 덕분에 부여 초입에 성왕의 동상이 있었던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부여에서 가장 처음 방문한 곳은 부여 왕릉원이었다. 초3 아들은 베스트여행사에서 준 팜플렛 속 백제금동대향로 미로찾기와 OX퀴즈 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늦가을 나무 아래 수북히 쌓인 낙엽들을 머리 위로 던지기를 반복하며 놀다가 해설자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굴식돌방무덤과 이곳은 사비시기 왕릉이 모여 있다는 설명을 해주셨는데, 사실 해설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작으셔서 모든 내용을 귀담아듣지는 못했다.
왕릉원에서 국립부여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가 전시된 곳으로 들어갔다. 입구부터 금동대향로의 미디어쇼가 펼쳐졌고, 코너를 돌자 백제금동대향로의 실물이 조명 아래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아들과 나는 합창하듯 동시에 "우와"하고 감탄을 했다. 넋을 잃고 보는 동안 해설자 선생님이 오셔서 금동대향로가 어디에서 발견되었고, 위덕왕이 성왕의 넋을 기리며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것, 여러 문양들이 왜 새겨졌는지를 정말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셨다. 아들은 해설자 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듣고는 바로 곁에 3D로 구현한 금동대향로에서 도깨비와 호랑이와 말을 탄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한참을 짚어보았다. 이걸 5세기에 만들었다니, 사람이 아니라 신이 만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교했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입구서부터 해설자 선생님이 함께했다. 선생님은 석탑 100미터 앞에서 우리에게 석탑이 몇 미터일 거 같냐고 물으셨다. 대부분이 5미터, 6미터를 말씀하셨는데, 아들은 7.4미터라고 했다. 아무리 높아도 7.4미터는 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석탑은 8.3미터였다.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다. 원래 가까이 갈수록 커지는 게 당연하지만, 가까이 가니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다. 순간 경주에서 보았던 감은사지 3층 석탑이 생각났다. 두 탑 모두 그대로 보존되었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두 탑이 주는 느낌이 비슷했다.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다는 느낌.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지금까지 한 번도 해체한 적이 없어 탑을 쌓은 년도를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으니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아들은 석탑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주변에 있는 두 개의 돌을 집어 들고 둥글게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그 후로 두 개의 돌을 들고 다니며 차를 타거나 실내에서는 주머니에 돌을 넣고, 돌길을 걸을 때면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 길바닥 위에 쪼그려 앉아 문질러댔다. 손이 신나보여서 하는대로 내버려뒀다.
점심을 먹고 방문한 공주는 온통 무령왕이었다. 공주박물관에서 무령왕의 관을 축소시킨 모형이 있어 직접 해체하고, 만들어볼 수 있었다. 마지막 코스인 무령왕릉에 도착했을 때 아들은 또 내려야하냐며 투정을 했는데, 막상 무령왕릉에 들어가서는 가장 늦게 왕릉에서 나와 버스가 있는 곳까지 빨리 움직여야했다. 벽돌무덤을 재현해 놓았는데, 무덤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아늑했다. 책상과 의자, 스탠드가 있었다면 앉아서 몇시간이고 책을 읽으면 좋은 공간이었다. 해리포터의 방 같기도 했는데, 작은 구멍으로 허리를 숙이고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면 좀 더 머물렀을 것 같다. 곳곳에 유물과 흙을 옮기는 다양한 VR체험이 있었는데, 30분이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아, 부여롯데리조트를 빠뜨리면 안될 것 같다. 아들이 가장 좋았다고 한 리조트는 한옥과 현대식이 합쳐져 밤에도 낮에도 보기에 아주 근사했다. 어떤 건축가의 작품인지 궁금해 네이버에 부여롯데리조트 건축가를 검색하니, "부여롯데리조트는 건축가 김승회의 작품이다."라고 쓰여진 글귀를 찾았다. 그리고 김승회 건축가는 부여롯데리조트를 통해 21세기 백제를 구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쓰여 있었다. 곡선형 외관 곁에 차례로 서있는 소나무, 방에서도 베란다 창을 열면 보이는 소나무들이 보기에 아주 좋았다. 다음날(11월11일) 조식을 먹으려고 눈을 뜨자마자 움직였는데, 곧 더 일찍 일어날걸 후회했다. 아보카도, 치즈, 순두부 스프, 쌀국수 등 모든 음식이 입맛에 맞았다. 생지를 직접 와플기에 넣어 구워 먹을 수 있었고, 키즈 스테이션도 따로 있었다.
그동안 몰랐는데, 공주역에서 서울역 또는 수서역까지 약 1시간 거리였다. 마한 해양 실크로드 답사를 계기로 한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를 좀 더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주역을 통해 조만간 다시 공주와 부여를 찾을 생각이다. 공주와 부여가 경주처럼 아이들을 위한 도예체험이나 동물들이 있는 농장, 새박물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부여롯데리조트에서 머무르며 한번 더 금동대향로, 정림사지 5층 석탑, 무령왕릉을 둘러보고 싶다. 그리고 두번째 방문하는 날에는 아들에게 한마디 건네고 싶다. "아들, 너도 배려하는 마음, 지혜로운 생각, 도전하는 용기를 가지면 무령왕처럼 영원히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될 수 있어."라고 말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보다 좋은 건 없지 않은가? 멋진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신 전라남도와 전남문화재연구소, 베스트 여행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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