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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이 희망이다]“소모품 아닌 장인의 손길로 ‘정당한 옷’ 만듭니다”

작성자 경제통상과 작성일 2009-07-13
ㆍ전태일열사 여동생 전순옥대표

사회적기업 ‘참신나는 옷’ 전순옥 대표(사진)는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으로 그의 정신을 계승하려고 노력하는 사회적 기업가다. 동시에 전 대표는 ‘전태일의 여동생’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노동자가 소외되지 않는 ‘정당한 옷’을 만드는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참신나는 옷’을 설립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노동운동을 했다.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와 관련된 일을 많이 했다. 1985년부터 여성 노동자들의 아이들을 돌보는 기관을 운영한 것이 시작이었다. ‘개구쟁이 어린이방’이라는 이름의 탁아소였는데, 아이가 10개월일 때부터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돌보아 주던 곳이었다. 또한 10대 여성 노동자 공동체를 만들어 공장 바깥에서 살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여공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공장 위 다락방에서 잠을 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장이나 공장장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사례가 많았다. 1986년도부터 신당동에 방을 얻어서 12명의 여공들을 2년씩 살게 했다. 기간이 지나면 2명씩 짝을 지어 자취방을 얻어 살게 했다. 이후 평화시장 봉제공장 사장들에게 노동자 기숙사를 공장으로부터 독립된 형태로 만들라고 요구하는 등 여성 노동자 권익 신장에 노력했다.”

-왜 장충동에 공장 터를 잡았나.

“건물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통풍은 잘 되는지, 창문이 있는지 등을 따지다 보니 창신동에 조건이 맞는 곳이 없어 장충동에 건물을 얻게 됐다. 오빠(전태일)가 말한 ‘모범업체’와 최대한 비슷한 노동환경을 만들었다.”

-모범업체의 꿈을 잘 실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참신나는 옷’ 직원들은 장인으로서 일한다. 자신의 능력으로 소기업을 창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려면 손기술이 완벽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공장에서처럼 옷을 ‘찍어내는’ 일을 되풀이하다 보면 결국 임금노동자로 남지, 모든 옷을 잘 만지며 스스로 창업할 수 있는 능력은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임금이나 보험 및 작업장 환경과 같은 실물 부분은 문제가 없다. 노동자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도 모범업체를 위한 중요한 과제다. ‘참신나는 옷’에는 다른 공장에서 20년 이상 일했던 사람도 많다. 이들은 그 동안 자신을 소모품처럼 여겨왔다. 이들은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지 못하며 푸대접을 받고 살아왔다. 이들이 우리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이제 나도 한 여성 노동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리 패션쇼에서는 미싱사들을 모델로 세운다. 그 동안 노동자들을 죄어왔던 관습의 테두리를 뛰어넘지 못하면 계속 ‘공순이’라는 이름을 평생 지고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다들 못 하겠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막상 무대에 오른 뒤에는 모두들 한껏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제품 가격이 조금 비싼 것 같다.

“우리가 고급화를 택한 것은 창신동을 포함한 동대문 인근 봉제업체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다. 그 동안 동대문은 끊임없이 가격파괴 경쟁을 했다. 싼 옷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만큼 질은 떨어지고, 노동자의 노동조건도 열악해졌다. 아직까지 창신동에는 한 벌에 몇 천원의 공임을 받고 골방에서 하루 14시간에 걸쳐 100장씩 옷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소비자들이 자신이 구매하는 옷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게 된다면 무조건 싼 옷을 고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참신나는 옷’의 가격은 노동자가 정해진 노동시간을 지키고, 좋은 옷감을 이용해 천연 염색을 하는 모든 과정의 가치가 포함된 금액이다. 가격이 비교적 높은 대신에 노동착취가 없고 옷 만드는 전 과정을 숙련된 노동자가 통제한다. 가격이 싸면 서민 옷, 비싸면 부르주아 옷이라는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일자리 창출과 수익실현이란 두 가지 목표를 잡기 위한 계획은.

“현재 장충동 ‘참신나는 옷’ 건물은 매장이라기보다는 공장에 가깝다. 아는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지만 현지 공장에서 옷을 사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는 대리점 형태로 판로를 모색할 예정이다. 인사동에 대리점 부지를 한 곳 계약했다. 또한 천연 염색 옷과 단체복을 중심으로 영업하겠다. 물론 고용창출과 ‘정당한 옷’을 만든다는 우리의 지향점을 지키는 것의 연장선에서 영업이 이뤄져야 한다.”

-영국에서 공부했다고 들었다.

“창신동에 있을 때부터 교회 등지에서 영어를 배웠다. 동료들이 “부르주아 물이 단단히 들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1987년부터 노동캠페인을 벌이며 외국 노동자들과 많이 교류했다. 1988년 일본에서 한 달, 89년 독일에서 두 달 있으면서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이나 여성노동자 인권에 대해 많이 토론했다. 국내에서만 머물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노동자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꿈을 안고 35살이 되던 1989년 영국으로 갔다. 영국에서 노동사회학과 사회적 기업에 대해 공부했다. 이 때 ‘모범업체’를 현실화하기 위해 벤치마킹할 여러 사례를 찾았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오니 2001년이었고, 과거 1980년대와 다르지 않은 창신동의 모습을 보고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게 됐다.”

-오빠 전태일의 후광이 부담스럽지 않은지.

“많은 사람들이 전태일의 여동생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빠의 인생을 그대로 답습했다면 지금도 노상 투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빠의 인간에 대한 사랑, 노동자에 대한 생각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전태일의 삶을 대신 사는 사람이 아니며 오빠의 존재에 대한 부담도 느끼지 않는다. 오빠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염원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오빠가 바라는 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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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업데이트201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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