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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군지명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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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 지명유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1-30
▣ 담양군
담양(潭陽)이란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담양도호부조(潭陽都護府條)에 이르면, 「본래 백제(百濟) 추자혜군(秋子兮郡)이었는데 신라때 추성군(秋成郡)이라 바꾸었고, 고려 성종 14년(995)에 담주도단련사(潭洲都團鍊使)를 두었다가 후일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어 나주에 복속하게 되었다. 명종 2년(1172)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공양왕 3년(1391)에 율원현(栗原縣)을 겸임케 하였다. 본조(朝鮮)에 들어와 태조 4년(1395)에 국사(國師) 조구(祖丘)의 고향이라 하여 군(郡)으로 승격시켰다.
공정왕(정종) 즉위1년(1398)에 왕비 김씨의 고향이라 하여 부(府)로 승격시키었다가 태종 13년(1413)에 예(例)에 따라 도호부(都護府)로 삼았다.」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 본 담양군은 담양읍과 고서(古西)ㆍ금성(金城)ㆍ대덕(大德)ㆍ무정(武貞)ㆍ대전(大田)ㆍ봉산(鳳山)ㆍ수북(水北)ㆍ월산(月山)ㆍ용(龍)ㆍ창평(昌平)의 11개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같은 현재의 담양군의 행정구역을 이루는 중요한 골격의 형성은 1914년 일제에 의해 단행된 행정구역 개편조처일 것이다. 즉 이때 담양군과 창평군을 합하여 담양군을 이루고 창평군 관할이었던 옥과면(玉果面)은 곡성군(谷城郡)에 이관시키며 그밖에 현 대전면, 수북면이나 남면을 이루는 지역은 광주시와 장성군의 관할에서 이속받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근세 이전의 담양군을 이루는 지역은 크게 보아 담양과 창평의 두 개의 행정단위로 나뉘어 존속해 왔었음을 알 수 있다.


▣ 병풍산 지명유래
담양읍에서 서북쪽으로 약 8km 지점에 있는 이 병풍산은 담양군 대전면, 수북면, 월산면 장성군 북하면에 경계를 이루고 있다.
담양군 수북면 소재지에서 병풍산을 바라보면 왜 이 산을 병풍산이라 했는지 쉽게 짐작할수 있다. 오른쪽 투구봉에서 시작하여 우뚝 솟은 옥려봉, 중봉, 천자봉을 거쳐 정상인 깃대봉과 신선대까지 고르게 뻗은 산줄기는 한눈에 보아도 틀림없는 병풍이다. 병풍산은 높이가 822.2m로 노령산맥에 위치하고 있는 산중에 가장 높은 산이다. 또한 북동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은 병풍산은 등줄기 양옆으로 무수히 많은 작은 능선이 있는데 이 능선 사이에 일궈진 골짜기가 99개에 이르는데 이중 한개 골짜기만 빼고 나머지의 골짜기는 항상 물이 흐르고 있다


▣ 가마골 지명유래
옛날 담양 고을에 어떤 부사가 부임하였다. 그는 풍류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가마골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고 하여 이곳 경치를 구경하고자 관속들에게 예고령을 내리고 그날밤 잠을 자는데 꿈에 백발선인이 나타나 내일은 내가 승천하는 날이니 오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부사는 신령의 말을 저버리고 이튿날 예정대로 가마골로 행차했다. 어느 못에 이르러 그 비경에 감탄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못의 물이 부글부글 소용돌이 치고 주위에는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황룡이 하늘로 솟아 올랐다. 그러나 황룡은 다오르지못하고 그 부근 계곡으로 떨어져 피를 토하며 죽었다. 이를 본 부사도 기절하여 회생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 뒤 사람들은 용이 솟은 못을 "용소"라고 하고 용이 피를 토하고 죽은 계곡을 "피잿골", 그리고 그 일대 계곡을 그릇을 굽는 가마터가 많다고 하여 "가마곡"이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가마곡"이 "가마골" 로 변하여 불려졌다고 전해온다.


▣ 삼인산 지명유래
대전면 행성리와 수북면 오정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564m이다. 산 북쪽에는 삼인동(三人洞)이라는 마을이 있다.
삼인산(三人山)은 몽선암(夢仙庵)으로 불러왔다. 지금부터 1천2백여년전『견훤난』때 피난온 여인들이 끝내는 몽선암 에서 몽고(蒙古)의 병졸들에 붙잡히게 되자, 몽선암 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져 몽고 병졸들의 만행을 죽음으로 항쟁 했다는 것이다. 그후 이성계(李成桂)가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자신(自身)의 등국(登國 = 임금의 자리에 오름)을 위해 전국의 명산(名山)을 찾아 기도하던 중 이성계(李成桂)의 꿈에 삼인산(三人山)을 찾아라는 성몽 끝에 담양의 삼인산(三人山)을 찾아 제를 올리고 기도하여 등극을 하게되자 꿈에 성몽하였다 하여 몽성산(夢聖山)이라 하였다고 전해오고 있어 몽선산(夢仙山)이 오랜 세월동안에 변하여 몽선산(夢聖山)이 되었다는 일설도 있다.
당초 三人山 의 명칭은 산의 형태가 사람人자 3자를 겹쳐 놓은 형국이라하여 三人山이라 이름하였다.
산 북쪽에 아래 있는 三人洞 마을은 1750년경(英祖) 무안(務安)에서 함양인(咸陽人) 유학자(儒學者) 박해언(朴海彦)이 풍수지리설을 따라 명당을 찾았던 곳이 삼인산(三人山이)다. 산세가 좋고 산아래는 만물이 태생하는 터가 자리 잡고 있어 정착하였다는 것이다.
(또는 1800년경의 설도 있음) 三人山 아래의 중앙에 위치하여 三人洞이라고 이름하였다는 것이다.


▣ 추월산 지명유래
담양읍에서 북쪽으로 14km쯤 가면 전남 5대 명산중의 하나인 해발 731m의 추월산을 만나게 된다. 담양읍에서 보면 스님이 누워 있는 형상인데 각종 약초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옛부터 명산으로 불렸으며, 진귀종의 추월산난이 자생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추월산 하부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고, 노송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여름이면 가족을 동반한 관광객들에게 더없는 휴식처가 되고 있으며, 그리 높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오를 수 없는 산능성으로 연중 등산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 만덕산 지명유래
광주에서 18㎞ 거리에 위한 담양 대덕면 운암, 문학, 용대마을에 걸쳐 우뚝 솟아 있는 산으 로서 재래종 소나무, 참나무가 어울려져 터널을 형성하고 있으며,봄에는 각종 산나물과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이 어루러진 녹음, 가을철에는 머루다래와 단풍, 겨울에는 설경 등이 등산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만덕산(萬德山)은 해발 575m로 한자로 일만만(萬), 큰덕(德)을 써서 만인에게 덕을 베푸는 산이란 뜻이다.
지역주민들에 의하면 임진왜란과 6.25를 비롯한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도 지역주민들이 전화를 입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만덕산이 덕을 베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덕산 아래 상운(上雲마)마을이 있는데 만덕산 등허리를 구름이 감싸고 있다하여 운암리라고 부르며 산 안으로 위쪽에 있다하여 상운이라 하였다. 500여년전 평산(平山), 순흥(順興) 안씨가 처음 정착하였다.
만덕산 중턱에 천마폭포 또는 물통거리라고 부르는 계곡을 흐르는 물이 약효가 있어 천형의 병을 앓는 환자들이 물을 먹거나 목욕하기 위해 많이 모였으나 객지 병자들의 출입을 싫어하는 주민들에 의하여 폐쇄되었다고 한다.
만덕산 마을의 식수가 만덕산에서 흐르는 석간수로 예부터 병없는 마을로 알려져 있고, 다른 마을에 비해 주변에 산들이 많아 주택의 담장이 대부분 돌 담장인 것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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